TOURIST SPOT・EXPERIENCE
소재지:徳島県三好市西祖谷山村善徳1204
진다이오도리는 1100년 이상 옛적의 기우제가 기원이라고 일러지고 있으며 각지에 전해지는 액막이나 농작물의 해충을 몰아내는 행사(무시오쿠리) 와는 다릅니다. 화려하고 용장한 춤은 나라의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소재지:徳島県三好市西祖谷山村重末249
오에이2년(1419년)에 건립된 니시이야의 시게하치만신사에 전해지는 북으로, 오곡풍양과 악마퇴치를 기원하며 가을 제사 때 봉납됩니다.
소재지:徳島県三好市西祖谷山村徳善110
후스마카라쿠리는 한줄로 나란히 한 여러장의 후스마(일본식 창호문)가 가로,세로,비스듬히 회전하며 잇따라 변하는 풍경과 모양을 즐기는 전통예능입니다. 도쿠젠 카라쿠리는 매우 드문 가설 이동식 카라쿠리 무대에서 사용됩니다. 우시로야마 후스마보다 사이즈도 크고, 총갯수는 9그룹 57점. 가을 축제 시기에 지역 민요민무와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요시시 지정 유형민속문화재.[지정년월일:2012.12.20]
소재지:徳島県三好市西祖谷山村後山289
후스마카라쿠리는 한줄로 나란히 한 여러장의 후스마(일본식 창호문)가 가로,세로,비스듬히 회전하며 잇따라 변하는 풍경과 모양을 즐기는 전통 예능입니다. 전후의 부흥, 고도성장과 아울러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있었으나 2005년10월에 50년만에 부활 공연을 개최하였습니다. 후스마 69장. 현재도 가을 축제 시기에 지역 민요민무와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요시시 지정 유형민속문화재.[지정년월일:2006.2]
소재지:徳島県三好市西祖谷山村徳善110
기원은 스가와라미치자네가 사누키노카미 재임중에 시작되었으며 큰 가뭄으로 곤란해 하던 농민을 위해 기우제를 행한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매년 10월 개최의 후스마카라쿠리 야간공연(토요일:부정기)중에 행사하고 있습니다.
소재지:徳島県三好市三野町芝生822
1465년경, 미요시씨 조상인 요시나가가 축성. 현도12호선 바로 북쪽의 한단 높은 하안단구 일대에 있으며 구획명을 「도노야시키」라 합니다. 유구는 없지만 설명 안내판이 있습니다.
소재지:徳島県三好市池田町サラダ1661
도쿠가와 막부의 일국 일성 제도에 의해 오오니시시로(오오니시 성)은 철거되고, 영내의 치안 및 국경의 보호에 해당하는 이케다시가 선정되어 그중 한 사람 마미야 일가의 문 으로 세워졌다.
소재지:徳島県三好市山城町寺野
해발 460m에 시로야마 정상에 있고, 1577년(텐쇼 5년) 초소가베의 군대와 영광스럽게 싸운 역사적인 전쟁터 이다.
소재지:徳島県三好市山城町
미요시 야마시로쵸는 오보케 코보케 협곡과 시오즈카 고원등으로 알려진 시코쿠 산맥의 험한 비경 입니다. 거기에는 시코쿠의 국경을 지키는 용맹한 산악무사의 마을이자 전국에는 드문 요카이변화의 전설의 마을이기도 합니다. 이 곳은 위험한 곳도 많이 있기에 요괴의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위험한 곳에 접근 하지 못하도록, 요괴의 이야기는 사고나 사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지혜로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요괴에 관한 것과 더불어 지역 주민들의 지역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인정되어, 2008년 5월 25일, 세계요괴협회로부터 「요괴유산」으로 인정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인증은 제 2호로써, 제 1호의 인증은 돗토리현의 사카이미나토 시 입니다.
소재지:徳島県三好市池田町イタノ
요시노카와·이케다 댐 호수에 걸려있는 랭거 형식의 아치형 다리. 5 경간 연속 밸런스 콘크리트 아치형 다리는 여기 뿐 이다. 시코쿠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도쿠시마 자동차 도로이기도 하다. 다리 밑에는 이케다 댐 호수와 공원이 있다.
소재지:徳島県三好市三野町太刀野1909−1
츄오코조센(중앙구조선)은 서남 일본의 지질을 대륙쪽과 태평양쪽을 나눈 대단층이다. 큐슈의 야쓰시로시에서 시코쿠의 마쓰야마, 이케다, 미노, 나루토를 거쳐 기이반도를 종단하고, 이세만에서 덴류가와를 따라서 스와호수에 이르며, 또한 간토산지에 이어지는 약 1000km가 넘는 대단층이다. 현재는 요시노가와 북쪽해안의 하반과 미치노에끼(역)[미노]의 주차장 옆 아래에서 볼 수 있다.
소재지:徳島県三好市三野町芝生
지금부터 약 200년전 시보마을에서 태어난 야마모토 신다유는 촌장이었던 히라오 슈베와 함께 대리인으로써 활약했다. 1806년(분카3년), 요시노 강 북쪽 일대가 심한 가뭄에 시달리게 되었고, 농민들은 가뭄에 의한 기근과 과중한 세금에 견디질 못해, 사누키(지금의 가가와)로 도망가기에 이르렀다. 야마모토 신다유는 관개수로를 만들기 위해 촌장과 상담하고, 실패를 하면 할복으로써 자기 목숨을 바치겠다는 혈서를 써 아와번의 허락을 받아내, 2년 후 힘들게 관개 수로 공사를 완성 시킨다. 그러나 그 후, 매년 산사태로 수로가 묻혀지게 되고, 야마모토 신다유는 이것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던 중, 규슈의 어느 광부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터널을 이용한 용수로의 개착을 떠올리게 된다. 1827년(분세이 10년), 야마모토 신다유는 많은 어려움과 희생을 극복하면서, 길이 268.5 미터의 용수로를 완성 시킨다. 이 용수로(관개수로) 덕분에 감자가 주식이었던 세 마을 (카모노미야, 세이리키, 시보)은 풍부한 곡창 지대가 되었다.